투자보다 먼저, 성장의 근육을 만든다
유튜브 · 아산나눔재단 · 2026년 7월 13일 · 조회 2 · 출처 보기↗
알라미는 아침잠이 많던 대학생이 자신을 깨우기 위해 만든 토이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알람을 끄려면 정해둔 장소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 단순한 기능이었다. 출시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내려받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틀이 지나도 사용자는 친구들뿐이었다.
신재명 딜라이트룸 대표가 이후 60개국 앱스토어 1위와 연 매출 3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만든 과정은 특별한 한 번의 선택보다, 제품·고객·돈·조직을 다루는 능력을 조금씩 축적한 과정에 가깝다.
작은 제품도 발견되려면 엑스트라 마일이 필요하다
마케팅 경험도 예산도 없었던 창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무작정 보낸 메일에는 답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어떤 기자라면 이 제품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알라미의 모티브가 된 물리적 알람시계를 소개했던 미국 CNET 기자를 찾아, “당신이 소개한 제품과 비슷한 것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었고 무료로 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기자가 리뷰를 쓰자 기사가 유럽과 캐나다로 퍼졌다. 이후에는 “한국 대학생이 만든 앱이 미국 매체에서 먼저 소개됐다”는 맥락으로 국내 언론에 접근했다.
초기의 몇만 사용자는 지금 보면 큰 숫자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던 제품을 예산 없이 세상에 꺼내는 데는 충분한 돌파구였다. 여기서 말하는 엑스트라 마일은 단순히 메일을 많이 보내는 근성이 아니다. 상대가 관심을 가질 이유를 먼저 찾고, 같은 제품도 그 사람에게 맞는 맥락으로 전달하는 일이다.
고객 중심은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파고드는 것이다
알라미 성장의 핵심으로 신 대표가 꼽은 것은 사용자 중심 문화다. 그는 초기 3년 동안 모든 VOC에 직접 답장했다. 그러나 피드백을 오래 보다 보면 “원래 불가능한 요청”이라며 넘기는 매너리즘도 생긴다.
이를 깨뜨린 것은 중국 사용자들이 반복해서 보낸 요청이었다.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어도 알람이 울리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장난스러운 요구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속 들어오는 이유를 조사하자, 일부 중국 제조사의 휴대전화는 배터리만 남아 있으면 꺼진 상태에서도 자동으로 켜져 알람을 울리는 기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기기를 먼저 사용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알람의 당연한 동작이었다.
“이걸 고칠까?”보다 먼저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를 묻는다.
딜라이트룸은 지금도 매주 500개 이상의 이메일과 리뷰를 번역해 리더들이 함께 읽고 토론한다. 목적은 요청을 모두 개발 목록에 넣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의 말 뒤에 있는 경험과 기대의 기준을 복원하는 것이다. 겉으로 무의미해 보이는 VOC에도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다.
구독과 광고는 서로 다른 사용자의 가치를 회수한다
알라미의 매출 구조는 약 30%가 구독, 70%가 광고다. 사용자의 약 5%가 고급 기능을 구독하고, 나머지 95%의 무료 사용자는 광고 매출을 만든다.
신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을 전달한 가치의 크기에 맞게 일부를 수익으로 회수하는 구조로 설명한다. 매일 사용하는 빈도 높은 앱에서는 모든 사용자를 유료 구독자로 바꾸려 하기보다, 구독 의사가 있는 사용자와 무료로 남는 사용자에게 서로 다른 수익 모델을 적용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13년 동안 광고 수익화를 직접 개선하면서 쌓인 기술은 새로운 사업으로도 이어졌다. 여러 광고 플랫폼을 붙여보며 부족한 부분을 자체적으로 보완했고, 수백·수천 개 광고 파트너를 경쟁시켜 같은 지면에서도 더 높은 단가와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엔진을 구축했다. 이를 투자·인수한 앱에 적용하자 매출이 두세 배로 오르기도 했다. 내부 도구였던 기술은 이후 B2B 광고 수익화 서비스 daro가 됐다.
이는 아마존 내부 인프라가 AWS로 확장된 과정과 닮았다. 자기 제품의 실제 문제를 오래 풀며 만든 부산물은, 같은 문제를 겪는 다른 회사에 판매할 수 있는 독립적인 제품이 될 수 있다. 다만 알라미에서 얻은 경험만으로 모든 종류의 앱을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딜라이트룸은 비트윈 같은 다른 성격의 서비스를 인수하며 학습 범위를 넓히고 있다.
투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돈을 쓸 근육부터 만들었다
딜라이트룸이 외부 투자 없이 성장한 것은 투자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처음에는 대학원에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운영했기에 투자를 생각하지 못했고, 이후 매출과 흑자가 생겼을 때는 받은 돈을 효율적으로 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10억 원으로 100억 원을 만드는 능력이 없다면, 100억 원을 받아 120억 원을 만드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본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먼저 만들겠다고 미뤘는데, 그 사이 매출이 다시 두 배로 성장했다.
투자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돈을 쓸 근육이 생길 때까지 받는 시점을 늦춘 것이다. 성장의 속도보다 성장 자원을 다루는 효율을 먼저 증명한 셈이다.
채용도 같은 원리로 진행됐다. 대표가 다섯 명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 때는 다섯 명이 최고 성과를 내는 환경을 먼저 만들고, 더 큰 조직을 운영할 자신이 생긴 뒤 다음 사람을 뽑았다. 제품 실험은 롤백할 수 있지만 조직에 사람을 합류시키는 결정은 되돌리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더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좋은 조직은 선택 기준도 계속 학습한다
보수적인 채용이 항상 옳은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니다. 수천 건의 이력서를 검토해 소수만 뽑고, 그중 절반만 수습을 통과시킨 적도 있었다. 신 대표는 이를 기준이 높았다는 자랑이 아니라, 인터뷰가 적합성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딜라이트룸은 인터뷰 당시 기록한 장점과 우려가 3개월 뒤 실제 모습과 맞았는지 확인하고, 1년 뒤 성과와 업무 태도까지 비교한다. 예측이 틀렸다면 “어떤 질문을 했어야 미리 알 수 있었을까?”를 역으로 찾아 인터뷰를 수정한다.
수습 기간에는 역할과 3개월 동안 기대하는 결과를 담은 스코어카드를 입사자와 먼저 맞춘다. 중간 시점에는 지금까지의 피드백과 남은 기간의 기대를 명확히 전한다. 이를 통해 마지막 날 갑작스럽게 합격과 불합격이 통보되는 일을 줄인다. 분기별 평가 역시 리더의 기대와 실제 결과 사이의 간극을 꾸준히 드러내는 장치다.
즉 채용 기준은 한 번 정해두는 정답이 아니다. 인터뷰의 예측, 실제 성과, 조직 적합성을 연결하며 계속 보정해야 하는 제품에 가깝다.
집중은 더 많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복잡성을 포기하는 선택이다
글로벌 진출에서도 딜라이트룸은 국가별 앱을 따로 만들기보다 글로벌 원빌드를 선호한다. 국가마다 기능과 콘텐츠를 최적화하면 현지 만족도는 높아질 수 있지만, 제품과 조직의 유지보수 비용도 함께 증가한다.
예를 들어 스쿼트를 해야 알람이 꺼지는 기능의 안내 영상은 어떤 문화권에서는 복장 때문에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각 국가에 맞는 영상을 모두 제작하기 시작하면, 이후 모든 기능을 기획할 때마다 국가별 예외를 검토해야 한다. 딜라이트룸은 이 정교한 현지화를 일부 포기하는 대신, 어느 국가에서나 통하는 보편적이고 뾰족한 문제에 더 집중한다.
이 영상에서 반복되는 원리는 하나다. 고객을 깊게 이해하되 모든 요청을 좇지는 않고, 매출을 키우되 감당할 수 없는 자본을 먼저 받지 않으며, 사람을 신중히 뽑되 엄격함을 정답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알라미의 성장은 “투자 없이 성공한 회사”라는 한 문장보다, 더 큰 기회가 올 때마다 그것을 다룰 제품·수익화·조직의 근육을 먼저 만든 회사로 기억하는 편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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